(2009-08-23 17:15:29)
김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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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살의 금숙씨


이 글은 8월19일 새전북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여든 살의 금숙씨>

계남정미소에 출근하면 적어도 한사람의 방문객이 아침, 저녁으로 들린다. 굵게 파인 주름, 구리빛 피부, 기억자로 굽은 허리, 신산한 삶의 이야기를 담은 80의 노객인 금숙씨다. 그네는 계남마을로 60여 년 전에 가마타고 시집을 온 후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 운 적이 없다. 제 작년에 남편이 죽고 설상가상으로 대낮에 모두 집을 비운 사이 불이 났다. 불은 집을 거의 태웠는데 특히 금숙씨 방이 전소가 되었다. 아들내외와 손자 손녀가 함께 사는데 금숙씨가 크게 상심을 했다. 그네는 허리가 굽고 계산이 둔하여 혼자서 거의 외출을 못했다. 그래서 조금씩 모은 돈을 방 틈새 이불 사이마다 꼭꼭 숨겨둔 것이다. 그 돈이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그네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고 가족도 거처가 마땅치 않아 집을 지을 때까지 임시로 마을회관에 머물게 되자 금숙씨는 대처에 있는 다른 자식 집으로 떠났다.

다음해에 돌아온 금숙씨는 많이 변해있었다. 그 전에는 허리가 굽었어도 밭일을 다 할 만큼 건강했었는데 이제는 폐결핵이 걸려 몹시 수척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머리도 쪽을 찧고 다녔는데 비녀가 빠지고 헝클어져서 다녔다. 만사가 귀찮고 심드렁해졌다. 농사철이라 마을이 텅 빈 어느 날 밭두렁아래에 보자기처럼 널브러져있는 금숙씨를 발견하고 진료소로 모시고 가서 치료를 받고 돌아왔다. 길이 헛보여 밭둑 아래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우연히 보아서 다행이지 그네는 신음 소리도 내지 않고 있었다. 다음날 나는 금숙씨의 머리를 짧게 잘랐다. 아들이 미장원에 가자고해도 고집을 부리고 안가는 데 잘 한일이라고 했다.
어느 날 금숙씨는 앞산을 보며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저 산도 우리 영감이 팔아먹었어.” 사실 금숙씨 네는 땅이 많은 편이다. 한 때 알부자로 소문이 났다. 금숙씨 내외가 손톱이 다 닳도록 일군 재산이었다.
“부자네요. 근데 그 산을 팔아서 뭐했나요?”
“ 나는 몰러! 땅을 다시 샀는지... 돈 뭉치만 봤어. 나는 평생 일만했지 돈은 모르고 살았어.” 이제는 폐병에 걸렸다고 사람들이 가까이 하기를 꺼려해서 하루 나들이가 고작 계남정미소다. 어쩌다 밭에 가서 일을 해도 가끔 쓰러지곤 해서 아들 내외가 극구 말린다. 소변실금증도 있는데 관리를 잘 안 해서 사람과 사귀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금숙씨는 자식들의 나이는 몰라도 우리 포도나무에 열린 포도송이 수가 없어진 것은 짐작으로 알아챈다.
금순씨는 음식도 까탈스럽다. 병이 나기 전에는 점심 식사도 같이 했는데 이제는 본인이 한사코 피한다. 돼지고기, 매운음식, 음료수 등은 절대 먹지 않는다. 유일하게 설탕 두 스픈을  넣은 봉지 커피를 좋아해서 올 때 마다 타다 드리면 그것만 맛나게 먹고 기운을 차린다.
작년에는 금숙씨 아들이 호박고구마를 잘해서 내가 지인들에게 20박스 이상을 팔아 주었다.  작년에 가물어서 고구마를 캐기가 힘들어 포크레인으로 캤는데 고구마가 많이 상했다. 상처 난 고구마는 곧 썩기 마련이어서 아들이 줄만한 사람 있으면 가져다 먹으라고 했다. 아는 교회 할머니들에게 겨울에 쪄 드시라고 했더니 그곳에서 와서 가져가는 것을 보고 금숙씨가 나와서 통곡을 했다. 결국 일부만 가져가고 나머지는 썩어서 버렸지만 금숙씨는 농작물에 대한 애착이 컸다. 처음에는 버릴 것 나눠먹으면 좋을 텐데 왜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렇게 평생을 살았을 금숙씨를 보면 차츰 이해가 되었다.
금년 봄 계남정미소에 하자센터 아이들이 와서 2주간 묶으면서 단골손님인 금숙씨와 친해 졌다. 아이들은 금숙씨를 진안장날 모시고 나갔다. 몇 십 년만의 나들이었던 것이다. 장터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금숙씨를 보고 어릴 적 친구라고 반기드라고 했다. 나는 처음으로 금숙씨가 이웃 백운면에서 시집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네는 과거의 이야기도 모두 잊은 듯 했다.
“내일은 월요일이라 여기 안 나오니 비 오면 고추를 안으로 들여놓아주세요.” 텃밭에 조금 심은 첫물 딴 붉은 고추를 잔디밭 위에 그대로 놔두고 가면서 금숙씨에게 당부했다.
“걱정마. 나는 여기 날마다 나옹께. 내일 또 쉬는 날잉가부네. 섭섭해서 어쩐디야. 갔다가 또 와!” 금숙씨는 신작로 가에 쪼그리고 앉아서 내가 차를 타고 떠날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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