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0-16 10:22:58)
김지연
용담위로 나는 새 [ 출간 ]


전형무 지음 / 김지연 엮음 / 사륙배판 양장 / 359쪽 / 35,000원

지은이 전형무(1941~1997)
전주사범대학교, 원광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육행정학과 졸업.
진안 조림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 지병으로 별세.
저서로는 그리운 고향산천, 진안의 얼, 진안지, 진안의 맥, 진안군사, 진안의 향기 등이 있다.

엮은이 김지연
사진작가. 공동체박물관계남정미소 대표.
근대화상회, 우리동네 이장님은 출근중, 나는 이발소에 간다 등 5권의 사진집이 있고, 10여 회의 개인전과 단체전을 열었으며, 공동체박물관계남정미소를 중심으로 10여 회의 전시기획을 했다.

기억을 넘어 역사로
이 책은 수몰 지역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고 그것을 기록하는 작업이다. 개인의 기록이기도 하고 집단의 기억이기도 하다. 그 공간은 물속으로 사라졌지만 책 속에서 아카이브로 기억되고, 그 시간은 희미해져가지만 책 속에서 기억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기억은 기억 속에서 기억의 확산 효과에 의해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역사가 될 것이다. 오늘 이 작업이 용담댐 수몰 지역이라는 공간과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시간의 기억을 넘어 새로운 역사로 나아가는 의미 있는 시작이 될 것이다.


용담 위로 나는 새
- 용담댐 수몰 이주 10주년을 맞아 이 땅의 역사를 기억하는 일

물속에 잠긴 마을, 물 밖으로 나온 마을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전북 진안군 정천면, 상전면, 용담면, 주천면, 진안읍이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68개 마을, 950만 평이 전북권의 수자원 개발을 목적으로 건설된 용담댐 속으로 수몰된 것이다. 그곳에 살던 2,864세대 12,616명은 수백 년을 살아오던 정든 고향을 떠나 주변의 다른 마을로 이주하거나 인근에 새로운 마을을 만들어 정착하거나 저 멀리 타지로 떠나갔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 용담댐은 전북 전주, 익산, 김제, 군산, 장항 등 서해안 지역에 생활용수와 농업, 공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그 지역의 300만 명의 주민과 공장, 농지는 많은 혜택을 보고 있지만 댐 완공 직전(2000년)에 이주를 마친 이주민들에게는 실향의 10년이었다. 순식간에 고향이 거대한 호수로 변해버린 것을 보면서 살아온 짧지 않은 10년이었다.
그리고 오늘, 용담댐 수몰 이주 10년을 맞이하여 󰡔용담 위로 나는 새󰡕가 사라진 68개 마을, 2,864세대를 물 밖으로 온전히 드러내어 그 사라진 산하와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삶을 기억하고자 한다.


용담댐 물속에 있는 땅의 의미와 역사
수몰 지역의 조림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던 지은이 전형무 선생(1997년 작고)은 용담댐 건설 계획이 확정된 후인 1995년부터 댐 건설로 사라지게 될 ‘그리운 고향산천’을 기억하기 위해 수몰 예정지에 대한 사진 촬영, 마을 조사, 풍수지리, 인문지리적인 고찰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작업의 노력이 선생의 작고 직후인 1997년 12월에 6권의 자료집으로 만들어져 이주민들에게 배부되었다.
이 책은 전형무 선생의 자료집을 바탕으로 사진작가 김지연이 지난 3년간 수몰 지역과 이주민을 발로 뛰면서 취재하여 다시 만들어낸 것이다.
이 책은 단순한 사진집이 아니다. 지금 용담댐 물속에 가라앉아 있는 68개 마을, 2,864세대를 다시 지상으로 불러내는 작업이며, 함께 살았던 12,616명의 이주민의 삶을 드러내는 일이며, 그리하여 바로 그 땅을 기억하는 것이다.
이 책은 당시의 마을 풍경과 사람들과 삶의 모습을 기록한 사진 아카이브와 함께 마을의 역사와 문화와 생활을 이야기함으로써 지금은 사라진 그 공간을,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는 그 시간을 오늘 되살려내는 우리의 ‘삶’과 ‘기억’에 대한 숭고한 작업이다.


마을과 마을 사람들 모두를 기억하다
이 책은 마을 풍경, 들판, 제방, 보, 숲, 냇가, 우물, 다리, 방앗간, 가게, 명당자리, 재각, 마을회관, 마을 행사, 그리고 마을 사람들 등 마을의 거의 모든 것을 역사의 렌즈로 담아낼 뿐만 아니라 인문지리적 접근으로 마을의 역사, 풍수, 전설 등을 기억의 역사 속에 복원해놓는다. 또한 부록으로 ‘마을 세대 배치도’를 세대주 이름과 함께 완벽하게 그려낸다.
수몰 지역에 대한 흔치 않은 아카이브 작업이자 기억이다.
여기서는 그중에서 먼저 용담팔경을 살펴보고, 이어서 마을 이름의 유래, 그리고 마을의 역사와 전설 몇 가지를 함께 기억해본다.

1. 시보다 더 아름다운 용담팔경을 기억하다
경치가 빼어난 고장에 가면 대개 멋진 장소나 건물을 중심으로 ‘OO팔경’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다른 곳의 그런 팔경과는 달리 시보다 더 아름다운 용담팔경을 기억한다.

용강추월(龍崗秋月): 용담의 진산인 용강산에 걸린 가을 달을 보며 시 한수를 떠올린다.
태고청풍(太古淸風): 태고정 마루에서 느끼는 용담의 바람이다. 사면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서늘하여 시 한수를 읊고 싶어진다.
응봉낙조(鷹峰落照): 용담읍내의 안산인 매봉에 깃드는 낙조의 모습이다.
소요낙안(逍遙落雁): 매봉에서 뻗어 내린 쇠독뿌리 끝의 소요대에 날아드는 오리의 모습을 즐기는 풍류이다.
옥천모종(玉川暮種): 천년 태고의 골짜기에 위치한 옥천암의 종소리가 골을 타고 내려와 용담읍내에 은은히 퍼질 때 평화와 고요함이 가슴마다 깃든다.
삼천서원(三川書院): 용담 유림들은 황산리의 배산임수의 터에 서원을 짓고 안자천, 정자천, 주자천의 물이 합쳐지는 경관을 즐겼다. 어부가 고기를 잡고 돛단배가 짐을 나르고 산과 물이 어우러진 형상으로 충, 효, 학문을 숭상했다.
송림수학(松林垂鶴): 소나무가 빽빽한 송림마을의 소나무에 깃드는 학의 경치를 말한다. 학은 선비의 기상이며 예술의 운치이고 평화와 풍요의 상징이다.
성남귀범(城南歸帆): 정자천과 안자천이 만나는 성남마을 앞의 강에 붉은 노을을 뒤집어쓰고 나루터로 돌아오는 돛단배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이다.

2. 소박한 마을 이름의 유래를 기억하다
소박한 마을 이름에는 자연의 모습과 배우고자 하는 소망과 잘 살고자 하는 희망이 담겨 있다. 그중 몇 개 마을의 이름을 기억해보자.

마을 북쪽 띠작고개를 넘으면 중간 지점에 마치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는 형상을 하고 있는 큰 바위가 있어 운암(雲岩)마을.
마을 뒷산이 거문고 줄처럼 여섯 가닥으로 뻗어 있고 옛날부터 못이 있어 금지(琴池)마을.
마을 뒷재에 누워서 자라는 정자나무가 있어 와정(臥亭)마을.
마을을 둘러싼 갯밭들이 달 모양이고 금강물이 포구와 같아 붙여진 원월포(元月浦)마을.
정자천이 반달처럼 휘감아 돈다 하여 붙여진 원월평(元月坪)마을.
노란 소가 강을 건넌다는 황우도강(黃牛渡江)형의 명당에 마을이 있다 하여 목 항(項) 자를 붙인 항동(項洞)마을.
봉학(鳳鶴)이 오동나무에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붙여진 오동(梧桐)마을.
새로운 벼루를 사용하듯이 공부에 정진해서 새로운 인재를 배출하자는 뜻의 신연(新硯)마을(새벼루마을).
두류봉 골짜기와 다랭이에 서당이 있어 글공부하기 좋은 마을이란 뜻에서 호학(好學)마을.

3. 마을의 역사와 전설을 기억하다
여러 마을의 역사와 전설이 오늘 용담 위로 나는 새속에서 사진과 더불어 살아나 남아 있는 우리에게 물속에 잠긴 용담을 이야기한다. 그중 몇 가지를 기억해보자.

중기(中基)마을에는 남쪽 꽃봉산 기슭을 지나면 산죽이 자생하는 대골로 이어지고, 옛날에 신부가 고개를 넘다 땀을 많이 흘려 연지를 다시 바르고 넘었다는 연지고개가 있었다. 오룡들 위쪽에는 목화꽃처럼 생긴 들이라는 맨화번덕, 다섯 마리 용이 살고 있어 가뭄에도 물 걱정이 없었던 오룡들, 소가 누워 있는 형국의 명당 터 우름실, 오래된 소나무가 울창했던 서정, 옛날에 봉화를 올렸다던 봉수터 등이 있었다. 중터에는 늙은 소나무가 울창한 서정(사정射亭) 동산이 있는데 옛날의 활터로 냇물과 어우러져 여름에는 피서객이 모여들었다.

원월포(元月浦)마을에 있는 해발 448m의 성주봉은 마이산과 비슷하게 커 오르던 산이었다. 산이 한참 커 오르고 있는데 밤중에 물 길러 나온 아낙이 보고 ‘저 산이 큰다.’는 외침 소리에 놀라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는 전설이 있다.

대방(大芳)마을은 1948년까지 절터골 냇가와 음지깍음 봉우리 두 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남자들이 미역국을 끓여 제사를 지내는 동안 부녀자들은 용담교 아래 큰 물에서 키에다 물을 길어 머리에 이고 왔다. 그러면 머리, 저고리, 치마가 흠뻑 젖었다. 그런 다음 음지깍음 봉우리에서 보릿단을 쌓아 불을 지르면 기우제는 끝이 났다. 산을 내려올 때는 흠뻑 비를 맞으며 기뻐했다.

금지(琴池)마을 서쪽으로는 배넘실산과 중실 골짜기가 있었다. 배넘실은 옛날에 홍수가 났을 때 배가 넘어간 산이라 하여 배넘실산이라 불렀다.

모곡(慕谷)마을에는 마을 주막거리에서 무다리를 건너 앞산에 이르면 사자바위라 하여 입을 짝 벌린 바위가 있다. 이 바위의 입을 막지 않으면 마을의 여자들이 바람이 난다고 믿어 정월 초가 되면 마을 남자들이 돌을 가져와 입을 막는 게 풍습이었다. 그러면 이 산의 끝자락에 살고 있던 새벼루 사람들이 모곡의 바위 입을 막아 그 음기가 새벼루로 온다 하여 밤에 와서 돌을 치워버렸다. 그러다 모곡 사람들에게 들켜 패싸움이 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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