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5-06 21:54:17)
김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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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그리움

이 글은 새전북신문 칼럼에 기고(4월29일)한 내용입니다.

사람 그리움

연인이나 가족 친구 외에 사람을 못 견디게 그리워해본 적이 있는가? 단지 그가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애절하게 붙들어 잡은 경험이 있는가?

마령면 계남마을에 일명 ‘고모’로 통하는 구십을 바라보는 할머니가 있다. 어느 모로 보나 할머니라고 부르는 편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런데 마을사람들은 고모라고 한다. 자식을 한 명도 낳지 않은 까닭에 조카가 자주 들려 돌본다.  그 조카가 고모 고모하고 찾아오니까 그렇게 부른 모양이다. 고모는 4년 전 내가 계남마을에 터를 잡을 때도 지팡이를 짚고 찾아왔다. 그런데 재작년부터 몸이 더 쇠약해져서 지팡이 두 개에 몸을 의지하고 다니더니 겨울부터는 그나마 거동이 불편하여 집에만 있다.
자녀가 없기 때문에 정부에서나 종교단체에서 많이 관심을 갖고 점심도 배달해주고 수시로 찾아와서 목욕도 시켜주고 간다. 자식이 있어도 잘 찾아오지 않은 노인들은 내심 부럽기까지 하다.
“무자식이 상팔자여”

지난여름 백운면 섬진강 발원지인 데미샘 아랫마을에 계곡물이 맑아 발을 담그러 들렸는데 마을 입구에 하얀 모자를 곱게 쓴 할머니 한 분이 지팡이를 집고 서 있었다. 무심히 할머니에게 인사를 했더니 말을 걸어오셨다.
“어느 마을에서 오셨우?”
“계남마을에서 왔습니다.”
“계남마을?”  할머니는 간절한 눈빛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우리 언니가 계남마을에 사는디, 자식도 못 낳고 이제 몹쓸 병이 들어 죽게 생겼는디,
내가 마지막으로 한 번 만나보고 싶어도 갈 수가 없어...“ 할머니는 눈물지었다.
지금 언니에게 대려다 줄 수 없겠냐고 사정을 했다. 그 언니라는 분이 바로 ‘고모’라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우리는 할머니를 모시고 계남마을로 왔다. 오는 도중에 언니에게 뭘 좀 사서 들고 가야겠다고해서 농협마트에 들려 음료수를 샀다. ‘고모’는 동생을 보고 너무나 반가워서 어쩔줄을 몰랐다. 엎드리면 코 닿을 거리, 불과 10키로 남짓한 거리를 두고 자매는 그토록 그리워만 하고 있었다.
노 자매의 상봉을 보고 계남정미소로 돌아와 점심을 막 먹으려는데 그 할머니가 찾아왔다. 집에 빨리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점심을 먹고 모셔다드리면 안되겠냐고 했더니 잠시 서울에서 내려온 자식들이 물놀이 나간 사이에 여기 온 것이니 찾을 것이라며 서둘러 돌아가야 한다고 막무가내셨다. 마침 우리도 동생내외가 놀러온 터였는데 제부가 점심상을 뒤로하고 할머니를 모셔다 드리고 왔다. 돌아와서 하는 말이 할머니가 마을 입구에서 내려달라고 부탁을 하시더라는 것이었다. 말은 안하시지만 그 이유가 자식들이 알까봐 염려하는 눈치더란다. 그리고는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제부 손에 쥐어주더라는 것이다. 제부가 기겁을 하고 도망쳐왔다고 했다. 마음이 짠했다.
그러고도 세월이 1년 반이 흘렀다.
‘고모’는 더욱 귀가 안 들리고 쇠약해졌다.

요며칠 사이 하자센터 로드스콜라 학생들이 계남정미소에 묵으면서 마을 사람들을 만나고 지역의 변천 유래 등을 찾아다니며 기록하고 지도 만들기 등의 작업을 하고 있다. 동네 분들을 찾아다니며 인사를 했다. 못자리 등 바쁜 농사철이라 집에 있는 분들이 별로 없었다. 우리는 ‘고모’집 앞을 지나는데 ‘고모’가 집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 있었다. 아이들을 보자 고모는 얼굴 가득 반가움이 넘쳤다. “우리 집에 온겨? 가지마.” ‘고모’는 내 손을 붙잡고 놓으려하지 않았다. “사람이 어찌나 그리운지 몰라!”


"사진은 김재 대목리 구멍가게(폐업) 주인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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